의무기록 당당하게 신청하세요. 진료실 이야기

오늘도 환자 한 분이 오셨는데 B형간염으로 수원에 있는 개인의원에서 항바이러스제를 2년간 드시던 분입니다. 이사를 오게 되어서 저희 병원으로 오시게 되었는데 주욱 병력을 물어보고 진찰을 한 다음, "그동안의 기록은 혹시 안 가져오셨어요?"라고 물어보니 이 분의 대답이 "안 그래도 이사를 오게 되어서 기록을 좀 달라고 했더니 잘 안 주시려고 하더라구요? 다른 곳에 가면 검사 다 다시 할 거고 그래서 기록이 필요없다고 하시던데요? 그리고 웬만하면 그냥 그 곳으로 다니라고 하시더라구요."라고 대답하십니다.

이 대화에서 무엇을 느끼셨는지요? 그 의사의 말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세요? 다른 곳에 가면 검사 다 다시 한다고요?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말입니다. 일단 이 분은 다시 검사를 하실겁니다. 왜냐하면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하면 3개월마다 검사를 해서 약이 잘 듣고 있는지 확인을 해야하고 이 환자분의 현재 상태를 파악해야 하니까요. 그렇지만 지난 2년간의 기록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약이 처음부터 잘 들었는지 잘 듣다가 내성이 생긴 것은 아닌지, 중간에 약을 한 번 바꿨다는데 왜 바꾸게 되었는지...그런 걸 알아야 이 환자분이 적절한 치료를 받았는지 또는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 "의무기록은 환자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병원은 환자의 기록을 위임을 받아 보관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구요. 법적으로 의무기록을 보관할 책임을 지게 되어있지요. 그렇지만 그 기록은 환자가 요구할 때는 원본이 아닌 사본의 형태로 환자에게 제공하게 되어있습니다. (원본은 반드시 보관하게 되어있으니까 원본을 요구하시면 안됩니다..^^) 물론 사본을 발급할 때는 소정의 진찰료(진료를 한 경우)와 수수료를 부담하셔야 하지만은요. 따라서 의무기록의 사본을 요구하실 때 필요없이 미안해하거나 주저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바로 옆의 병원으로 옮긴다든지 말할 수 없는 이유로 사본을 달라고 하시기에 인간적으로 미안한 경우는 제외하구요..^^

의사의 입장에서도 환자가 다른 병원으로 가실 경우에는 (상급병원으로 의뢰를 하든지 아니면 개인적인 사정으로 병원을 옮길 때는) 열린 마음으로 중요한 의무기록 (검사결과나 중요챠트)를 복사해 드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단기적으로 내 환자가 다른 곳으로 가면 손해다..라는 생각으로 사본발급을 차일피일 미루시거나 핑계를 대시면 결국 환자의 신뢰를 잃게됩니다. 제 경험상..(저는 환자가 다른 병원을 가시게 되면 미리 검사결과나 그동안의 경과를 적은 챠트등을 미리 챙겨드리는 편이데) 신뢰를 가지고 가신 환자 분은 결국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3차 병원에 가셔서 중요한 검사를 하시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고 다른 병원을 가셨는데 만족을 못 하고 돌아오는 경우, 멀리 이사를 가셨다가 다시 이 근처로 이사를 오게 되어서 돌아오시는 경우 등등...저는 저희 병원에서 기록을 복사해 드리는 환자분에게 꼭 당부를 하는데 만약 다른 곳에서 검사를 하시거나 치료를 받다가 다시 오시게 되면 반대로 그 병원에서 검사하신 기록을 가져오시라고 말씀드립니다. 비록 병원을 옮기게 되더라도 그래야 진료의 연속성이 이뤄지니까요.

기록을 가져오시라고 하면 어떤 분은 매우 귀찮아하시기도 합니다. "그거..인터넷으로 보내주거나 받으면 안되나요?"라는 질문도 하시지요. 물론 이론상으로는 그렇게 된다면 무척 편리한 일이겠지만..병원마다 기록을 저장하는 전산상의 프로토콜이 다 다르고 그것을 통일하고 보안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거의 수조원의 예산이 든다고 합니다. 결국 이뤄질 수는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병원이나 대학단위로 이뤄질 만한 일은 아니지요. 정부가 대대적인 투자를 해야 가능한 일일겁니다. 그러니 아직은 불편하시더라도 또 말을 꺼내기 어려우시더라도 자신의 기록을 챙기십시오. 그 자체는 미안한 일이 아니랍니다.

오늘 본 환자분은 지금의 상태를 알기 위해 검사를 해놓고 결과를 보는 2주후에 수원에서 다니던 의원의 검사기록을 가져와서 검토해 보기로 했답니다.

덧글

  • 나무피리 2008/06/14 18:11 # 답글

    전혀 미안해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군요. 대부분은 다시 검사하는데 뭘 싶어 안 받기도 하고 달라고 하기 어쩐지 좀 그래서 안 받기도 한다던데, 앞으로는 당당하게 챙겨받으면 되겠어요^^;;;;
  • 늑대별 2008/06/14 18:19 #

    그럼요. 이런 것에는 미안해 하실 이유가 전혀 없답니다. 이러이러해서 의무기록이 필요하다..라는 이유만 잘 얘기하세요. 정당한 이유없이 의무기록 사본을 안 주면 그게 잘 못이지요...^^
  • 파파울프 2008/06/14 18:21 # 답글

    그러고 보니 진료기록 주는걸 상당히 꺼리데요? 전 그게 무슨 법적 책임 같은 것 때문에 그러는 줄 알았어요.
  • 늑대별 2008/06/14 18:26 #

    일반적인 경우는 법적인 문제는 아닌 것 같구요... 아무튼 의사는 잘 챙겨줘야하고 환자는 잘 챙겨야 하는 것이란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게 서로에게 좋은 일인데 말이지요.
  • 江湖人 2008/06/14 22:17 # 답글

    환자 입장에서 눈치를 보는 일인데, '의무기록은 환자의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보니...당연한 것을 요구하지 못하고 있었군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늑대별 2008/06/14 23:05 #

    뭘 잘 못 한다면 눈치를 보겠지만...본인의 검사기록이나 치료경과를 진료의 참고용으로 사본을 달라는데 무슨 눈치를 보실 일이 있겠습니까. 다만 이것이 당연한 권리라고 사본발급에 들어가는 비용마저 안 내시겠다는 분들은 없어야...^^
댓글 입력 영역


한 RSS

unicef


날마다 새로운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