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부터 여유있게 자라지 못 한 나이지만 그래도 국민학교 고학년때부터는 조금씩 형편이 나아졌었다. 무슨 큰 돈을 번 것은 아니지만 월급쟁이인 아버지가 꾸준히 일을 하셨고 워낙 알뜰한 어머니의 억척같은 살림솜씨로 조금씩 살 만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 잠깐의 여유로움이 한 순간에 풍비박산이 났는데..아이러니컬하게도 그 것은 아버지의 병원비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국민학교때부터 원인 모를 전신경련을 간간이 일으켰고 당시 우리나라 최고인 서울대병원을 정기적으로 다니셨지만 원인은 알 수 없이 그냥 항경련제만 드시고 그런대로 지내시고 계셨던 것이었다. 내가 고등학교때... 어쩔 수 없었던 이유때문이라고 짐작되지만...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되셨고 당시에 처음으로 도입된 콜택시 기사를 잠깐 하시다가 어떻게 하다보니 그 콜택시회사의 운영을 맡게 되었다.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렇게 어려움이 닥칠지는 몰랐었다.
대학교 1학년때였나...아버지가 갑자기 심한 경련을 일으켰고 정신을 잃으신 것이다. 당시, 일요일에 그런 일이 있었고 일요일에는 대학병원도 전문의가 없던터라 일요일에도 정상근무를 하고 있는 위생병원을 찾게 되었고 진단은 "뇌수종"..뇌실에 물이 차는 병이었다. 응급으로 수술을 받았는데 뇌실에서 물이 빠져 나가는 길에 뭔가 부유물이 있고 그 것이 뇌실에서 물이 빠지는 길을 막아 뇌수종이 발병된 것이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뇌에 올라가는 기생충인 폐디스토마 또는 돼지고기에서 생기는 촌충증인 것 같다)...뇌압을 내려 급한 위기는 벗어났는데....문제는 치료비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국민개보험이 적용되자 않았던 때라 뇌수술을 받으면 당시 돈으로 1000만원...아버지는 이미 당뇨병을 앓고 계시던 터라 그 치료비는 논외로 하더라도 수술비가 턱없이 비쌌다..
더욱 문제는 그 수술이 한 번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후에도 뇌실을 자주 막혔고 나중에 고대병원으로 옮겨서 뇌수술을 무려 3번을 더 받으셨다. 결국 4번째 수술을 받으신 후 당뇨병의 합병증으로 84년에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4번의 수술과 중간 중간의 입원비를 내고 나니 집이 날아갔다. 아니, 집이 문제가 아니라 이후에도 남은 빚을 갚느라 온 식구가 힘들었을 수 밖에는...살던 집을 팔고 작은 잡으로 세를 들어갔고 나와 동생의 학비를 대느라 점점 셋집은 작아져갔고...겨울에도 난방비를 아끼느라 냉골인 방에서 잠을 자야했다...지금도 방바닥이 너무 차서 맨발로는 방바닥을 디딜 수 없고 누워서 입깁을 불면 하얗게 입깁이 나왔던 방안이 기억된다...그래도 장남인 내가 학교를 다녀야 했기 때문에(내가 빨리 졸업해서 돈을 벌어야지..) 내 밑의 여동생 둘은 대학교를 한 해씩 휴학을 해야했고.......결국 이 빚을 다 갚는데 15년 이상이 걸렸던 것 같다. 아니 아직 다 못 갚은 것 같기도 하다. 학교 다닐때 받았던 동문장학금을 아직 되갚지 못했으니까...^^;
만약 그 당시 의료보험이 잘 갖춰졌더라면...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아프면 정말 아무런 대책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비록 일부의 도덕적 해이로 말미암아 의료보험재정이 망가지는 면은 있지만 그래도 사회보장의 의미로 의료보험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그걸 뼈저리게 느낀 한 명의 의사로서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인 국민개보험과 최소한의 보장이 가능한 공공의료보험의 역할을 강조하고 싶다.
아버지는 내가 국민학교때부터 원인 모를 전신경련을 간간이 일으켰고 당시 우리나라 최고인 서울대병원을 정기적으로 다니셨지만 원인은 알 수 없이 그냥 항경련제만 드시고 그런대로 지내시고 계셨던 것이었다. 내가 고등학교때... 어쩔 수 없었던 이유때문이라고 짐작되지만...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되셨고 당시에 처음으로 도입된 콜택시 기사를 잠깐 하시다가 어떻게 하다보니 그 콜택시회사의 운영을 맡게 되었다.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렇게 어려움이 닥칠지는 몰랐었다.
대학교 1학년때였나...아버지가 갑자기 심한 경련을 일으켰고 정신을 잃으신 것이다. 당시, 일요일에 그런 일이 있었고 일요일에는 대학병원도 전문의가 없던터라 일요일에도 정상근무를 하고 있는 위생병원을 찾게 되었고 진단은 "뇌수종"..뇌실에 물이 차는 병이었다. 응급으로 수술을 받았는데 뇌실에서 물이 빠져 나가는 길에 뭔가 부유물이 있고 그 것이 뇌실에서 물이 빠지는 길을 막아 뇌수종이 발병된 것이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뇌에 올라가는 기생충인 폐디스토마 또는 돼지고기에서 생기는 촌충증인 것 같다)...뇌압을 내려 급한 위기는 벗어났는데....문제는 치료비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국민개보험이 적용되자 않았던 때라 뇌수술을 받으면 당시 돈으로 1000만원...아버지는 이미 당뇨병을 앓고 계시던 터라 그 치료비는 논외로 하더라도 수술비가 턱없이 비쌌다..
더욱 문제는 그 수술이 한 번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후에도 뇌실을 자주 막혔고 나중에 고대병원으로 옮겨서 뇌수술을 무려 3번을 더 받으셨다. 결국 4번째 수술을 받으신 후 당뇨병의 합병증으로 84년에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4번의 수술과 중간 중간의 입원비를 내고 나니 집이 날아갔다. 아니, 집이 문제가 아니라 이후에도 남은 빚을 갚느라 온 식구가 힘들었을 수 밖에는...살던 집을 팔고 작은 잡으로 세를 들어갔고 나와 동생의 학비를 대느라 점점 셋집은 작아져갔고...겨울에도 난방비를 아끼느라 냉골인 방에서 잠을 자야했다...지금도 방바닥이 너무 차서 맨발로는 방바닥을 디딜 수 없고 누워서 입깁을 불면 하얗게 입깁이 나왔던 방안이 기억된다...그래도 장남인 내가 학교를 다녀야 했기 때문에(내가 빨리 졸업해서 돈을 벌어야지..) 내 밑의 여동생 둘은 대학교를 한 해씩 휴학을 해야했고.......결국 이 빚을 다 갚는데 15년 이상이 걸렸던 것 같다. 아니 아직 다 못 갚은 것 같기도 하다. 학교 다닐때 받았던 동문장학금을 아직 되갚지 못했으니까...^^;
만약 그 당시 의료보험이 잘 갖춰졌더라면...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아프면 정말 아무런 대책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비록 일부의 도덕적 해이로 말미암아 의료보험재정이 망가지는 면은 있지만 그래도 사회보장의 의미로 의료보험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그걸 뼈저리게 느낀 한 명의 의사로서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인 국민개보험과 최소한의 보장이 가능한 공공의료보험의 역할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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