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AIDS) 환자 이야기 둘 진료실 이야기

요즘도 AIDS에 대한 기사가 간간히 나온다. 한동안 엄청나게 보도하다가 요즘은 그래도 조금 잠잠한 느낌...아직도 세계적으로 많은 문제를 일이키고 있지만 들은 바에 의하면 최근에는 항바이러스 약물의 발전으로 지속적으로 약을 먹으면 바이러스는 가지고 있지만 발병을 하지 않아 만성적인 병으로 점차 약화되고 있는 인상이다. 내가 레지던트때 그러니까 90년대 초반에는 우리나라에서 에이즈가 처음으로 발견되어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과 염려가 있던 때였다. 그럴 때 내가 감염내과를 돌고 있었고 그 당시에 내가 본 두 명의 에이즈환자 이야기를 할까 한다.

첫번째 환자는 70대 할아버지였다. 이 분은 심장수술을 하다가 수혈을 받은 혈액중에 에이즈 보균자의 피가 섞여 있어 감염된 경우였다. 당시만 해도 에이즈바이러스를 검출하는 검사방법이 발달되지 않아 감염된 혈액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수혈을 한 것이었다.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된 병원에서는 환자분에게 어렵게 그 사실을 알렸고 그 환자분은 정말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회진을 가면 항상 멍하니 창 밖을 보시면서 한 숨을 쉬고 계셨다. 할머니가 거의 같이 계셨는데..사실 발병이 되지 않아 치료를 할 것은 없었던 상황이어서 회진을 가면 주로 병의 경과에 대해 설명을 해 드리곤 했었다.  환자분과 부인의 제일 큰 걱정은 가족들이었다. 본인이야 이제 살면 얼마나 더 살겠는냐고..괜찮다고 하시면서도 손주나 자식들에게 병을 옮기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을 매일 같이 하고 계셨던 것이다. 에이즈는 감염이 잘 되는 병은 아니라고, 손주들을 귀엽다고 쓰다듬에 주시거나 껴안아 주시거나 식사를 같이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아무리 말씀 드려도 그 분들은 영 믿지 못하는 표정이셨다.

그러던 어느 날, 더욱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알고보니 할머니도 에이즈에 감염된 상태였는데 할머니가 감염된 이유는... 두 분이서 같이 죽자고 손목동맥을 그은 다음 같이 따뜻한 물에 담구셨단다. 그러면서 혈액이 섞였고 그래서 할머니도 감염이 된 것이었다...그래서 할머니도 그렇게 손주들이 집에 오면 피하셨던 것이었구나...아무튼..두 분은 가족도 다른 사람도 만나지를 않고 거의 병실에서만 계셨다.

내가 감염내과를 떠나고 그 분들의 소식도 동료들에게 가끔 듣고 있었는데..어느 날 신문기사와 TV뉴스에서 그 분들의 소식을 들었다. 할아버지가 지방의 어느 여관에서 할머니를 목졸라 죽이고 본인은 병원에서 투신자살하셨다는....그 환자분은 자신이 죽어야 자식들과 손주들을 보호할 수 있다는 부인의 부탁으로 부인을 죽인 것이었다. 그리고 본인도 자살을 하신 거고...할아버지와 할머니를 가까이에서 뵈었던 나는 그 분들의 엄청난 괴로움과 공포, 그리고 참담했던 마음을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지금 생각해 봐도 가슴이 아린다. 두 분의 명복을 빈다.....

두번째 환자는 20대 남자였다. 이 분은 동성애자였는데..1인실에 있으면서 면회객도 아무도 없고 환자서 쓸쓸하게 병실에 갇혀있었다...지금이야 그렇지 않겠지만 그 때만 하더라도 에이즈에 대한 공포는 의료인들도 마찬가지여서 간호사가 그 방을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 심지어는 문고리도 잡으려 하지 않고 문을 발로 밀고 들어가도 했다. 그래서 검사를 위한 채혈도 의사들이 직접해야 했다. 아무도 하지 않으려고 했으니까....문제는 그 환자의 인권이었다. 전염병이나 약에 대한 알러지가 있으면 챠트 맨 앞에 노란종이를 끼워놓아서 누구나 이 환자를 주의해서 보라는 표시를 했는데...예를 들어 이 환자가 이비인후과 진료가 필요해서 외래로 내려가면 환자의 무릎에 놓여진 챠트에는 노란 종이에 "AIDS"라는 표시가 되어 있는 것이었다. 누구나 볼 수 있게....참 문제가 많아 보였다. 그래서 내가 건의를 해서 노란 표시를 챠트의 안 쪽 첫 장으로 옮겼다. 최소한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AIDS 환자입니다.."라는 광고를 하지 않아도 되게...

또 하나 밥그릇..어느 날 보니 환자의 식판위에 있는 그릇 뚜껑에 검은 매직으로 X자 표시가 되어 있는 게 아닌가...영양과에 전화로 물어보니 에이즈환자의 그릇이라 특별히 소독을 하느라 그렇단다...다른 바이러스성 간염환자의 그릇과 같이 소독하면 된다고 전염의 위험은 없다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 도대체 들으려고 하지를 않았다. 그러다가 전염이 되면 책임을 지겠냐는데...그래서 결국 내가 졌다. 그렇지만 그릇 뚜껑에 X자 표시는 하는 것은 정말 인권침해라고..보이지 않게 그릇 밑면에 표시를 하자고 해서 협상이 되었다. 지금은 참 많이 변했다. 환자들의 개인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선진국의 예도 많이 배워왔고 실제로 많이들 고치고 있다. 그렇지만 겨우 15년여 전인데 그 때는 너도나도 야만적이고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무시하는 때였구나 싶다. 하긴..그 때는 사회가, 나라 전체가 그랬으니 병원은 오죽하랴 싶기도 하고...


덧글

  • 하루열번8층베란다 2008/04/06 07:45 # 삭제 답글

    선생님 글이 재미있어서 자주 들어오게 됩니다.
    그런데 문득 내 신분을 밝히는 것이 경우에 맞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하루에도 여러번 8층에서 바깥바람을 쐬는 인간들중 한명인데, 이름에 "태"자 들어가는 사람임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이야기, 그리고 밥그릇의 X표시, 잘 읽었습니다.

    90년대 초반의 나는 어땟나, 돌아보게 됩니다. 나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네요.
    아마도... X자 표시된 그릇 뚜껑은 모른척하며 만지지 않았을 것 같아요. 쩝쩝...
  • 늑대별 2008/04/06 11:20 # 답글

    그동안 누구신가 했습니다...^^ 그 때야 누구든 그랬을테지요. 저도 제 환자라서 그랬지 제 환자가 아니었으면 어땠을런지..
  • 한정호 2009/03/16 12:32 # 삭제 답글

    마음 아픈 이야기네요...

    저도 몇명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정리해서 쓰겠습니다. ^^
  • 늑대별 2009/03/16 17:49 #

    그렇죠..그래도 저는 저런 환자를 그 때 보고는 다행히 더 이상은 없었습니다. 병도 무섭지만 병에 대한 "공포"가 훨씬 더 심각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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