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핵약을 안 먹어서..그리고 결핵약을 먹어서.... 진료실 이야기

아직도 우리나라는 결핵에 관한한 후진국이다. 아직도 인구의 1%는 결핵이라니..
결핵의 치료는 그리 어렵지는 않다. 과거에는 스트렙토마이신이라는 주사를 매일 맞아야 했으므로 정말 힘들었고 가끔 쇼크사도 일어나기도 했지만 요즘은 주사약이 아닌 먹는 약으로만 6개월가량 잘 먹으면 거의 완치가 된다. 그런데 꼭 알야야 할 것은 결핵균은 약에 대해 내성을 잘 일으키므로 약을 중단하지 말고 꾸준히 잘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레지던트시절..20대 젊은 남자가 호흡곤란으로 응급실로 실려와서 호흡기내과로 입원하였다. 급히 기도삽관을 하고 인공호흡기를 걸어 위기는 넘겼으나 폐사진을 보니 공기가 들어있어 검게 보여야할 폐가 온통 하얗게 되어있는 것 아닌가. 아주 심한 폐결핵으로 진단하고 음식을 넣어주는 튜브를 통해 (인공호흡을 하므로 정상적으로 약을 먹을 수 없다.) 약을 투여하면서 결핵균 배양검사를 보냈다. 가족을 통해 다시 문진을 하니, 이 환자는 당시 구로공단에서 일을 하고 있는 젊은이였는데 몇년전 결핵을 진단받은 후 약을 먹었다, 안 먹었다 하면서 본인 마음대로 치료아닌 치료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런 경우에는 정말 내성이 잘 생기는데....일단은 방법이 없어 1차 치료제를 투여하면서 폐사진이 좋아지기를 기다리고 있는데..마침내 배양검사와 약물내성반응검사결과가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이 환자의 객담에서 배양된 결핵균은 1차 약뿐 아니라  2차약..아니 알려진 어떤 결핵약에도 안 듣는, 모든 약에 내성을 가지고 있었다. 방법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 수 있는 결핵약을 투여해보는 방법밖에는 없었지만...20대의 건강한, 아니 건강했던 남자는 그렇게 서서히 나빠지더니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제일병원에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25세된 키도 크고 늘씬한 여자환자가 왔다. 최근 기침도 하고 열도 있고 몸도 안 좋고...검사를 해보니 활동성 결핵...이 환자도 과거에 결핵으로 진단받고 잠깐 약을 먹다가 본인이 스스로 중단한 적이 있었다. 결핵에 대해 설명하고 왜 약을 잘 먹어야 하는지, 약을 먹으면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설명하고 약을 처방해 보냈다. 대개 약을 처음 먹으면 간기능에 이상이 있을 수 있으므로 2주치만 주고 2주후에 검사를 하기로 약속을 했다. 마침 추석연휴가 있었고...추석연휴가 끝나고 바쁘게 외래를 보고 있는데 환자의 어머니라면서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이세요?"
"선생님..xx 아시죠?..우리 xx가 그저께 죽었어요."
 "네????......."
사실 나는 아직 그 환자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얼마나 놀랬는지 그 당시의 상황을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아니 5일전 생글거리고 웃으면서 진료를 본 멀쩡한 아가씨가 갑자기 죽다니? 도저히 이해가 안 갔다...그 어머니의 부탁으로 그 환자가 응급처치를 받았던 병원으로 같이 가서 자초지종을 들었다. 알고보니..그 환자는 결핵약 중에 리팜핀이라는 약의 과민반응으로 쇼크를 일으킨 것이었다. 나중에 검색을 해 보니 세계적으로도 몇 안되는 희귀한 case 인데...예전에 리팜핀이라는 약에 노출이 되어 감작이 되어있는 상태에서 리팜핀이 다시 들어오면 격렬한 과민반응이 일어나면서 사망에도 이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환자는 약을 먹고는 어지럽고 미식거리는 등 이상반응이 느껴졌는데 연휴라 가까운 병원에 갔고..그 의사는 약을 중단해보라고 얘기를 했는데 약을 잘 먹어야한다는 내 얘기를 상기하고 다시 약을 먹은 것이었다.

결핵약을 제대로 안 먹어서...또 너무 잘(?) 먹어서 세상을 떠난 두 젊은이를 생각하면 참 안타깝다. 두번째 경우도 처음에 진단받았을 때 약을 잘 먹었으면 그런 과민반응도 나타나지 않았을텐데...아직도 우리나라에는 결핵환자가 많다. 그래서 약을 먹어야하는 사람도 많다. 제발..진단 받았을 때 귀찮아도 약을 잘 먹자.

덧글

  • 꺼벙이 2008/03/13 09:08 # 삭제 답글

    오늘도 부지런히 글을 올렸네요.
    어려운 의학에 대한 얘기를 이해하기 쉽게 쓰려고 하는 것 같지만, 저같은 문외한에게는 가끔 어려운 단어가 나와 사전을 찾아보게 하네요. 전에는 '천자'가 뭔가 했었는데, 오늘은 '감작'을 찾아봤어요. "[의학] 생물체에 어떤 항원(抗原)을 넣어 그 항원에 대하여 민감한 상태로 만드는 일."로 나와 있군요.
    좋은 하루 되시길!
  • 늑대별 2008/03/13 13:18 # 답글

    강박관념(?) 같은 것이 생겨서 글을 계속 올리게 됩니다. 일종의 중독증상?..^^ "감작"같은 것은 풀이를 해야 하는데 게을러서...이렇게 주석을 달아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
  • 실루리엘 2008/06/14 02:00 # 삭제 답글

    결핵....걸리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약 먹는게 너무 많다고 생각되요..아마 그래서 결핵 치료때

    어려움을 겪는것 아닐까요?

    1차약만 해도 INH + RFP + EMB + PZA.......
  • 늑대별 2008/06/14 07:44 #

    결핵균은 아주 천천히 자라기 때문에 약제내성을 가질 가능성이 많고 게다가 여러가지 약에 다제내성을 갖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최소3-4가지 약을 동시에 투여한답니다. 그래도 제가 레지던트 시절 스트렙토마이신이라는 주사를 2개월동안 매일 맞을 때보다는 훨씬 쉬워졌지요. 매일 양쪽 엉덩이에 번갈아가면서 주사를 맞는다고 생각해 보세요..게다가 스트렙토마이신은 가끔 쇼크가 일어나서 환자가 사망하기도 했답니다.
  • 힘내자 2008/07/08 17:14 # 삭제 답글

    현재 저도 결핵성늑막염으로 결핵약 복용중이고 최소 올해 말까지 약을 복용해야 하는데 무척 힘이 드네요..백액술을 시술했는데도 폐에물은 남아 있고..병원 입원만 결핵때문에 격리 치료차 18일 , 배액술 시술차 42일.. 정말 힘드네요 ㅡㅡ^
  • 늑대별 2008/07/08 17:32 #

    보통은 그렇게까지입원치료를 오래하지 않는데...심하신가 봅니다. 그래도 결핵은 약 잘 드시면 완치되는 병이니 신념을 가지고 약 잘 드시고...완치하세요.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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