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와 협상하기.. 진료실 이야기

의사와 타협하기 by 양깡님

그렇죠. 환자들은 의사와 항상 게임을 합니다. 물론 제로섬 게임은 아닙니다. 환자도 의사도 윈윈할 수 있는 게임이 될 수도 있지요. 저는 주로 이 게임을 즐기는 편이지요..^^

제가 보기에는 환자의 생활습관 질환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단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의사가 나(환자)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구나...이런 느낌 말입니다. 이런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기분 나쁘지 않은 농담이나 유머가 필요합니다.

저는 술을 많이 하시는 분들 만나면 일단 기본적인 문진을 하고, 간단한 진찰을 한 후 진찰대에서나 또는 진찰대에서 주섬주섬 내려오는 환자분께 다짜고짜 이렇게 묻습니다. "그런데...환자분은 왜 술을 그렇게 많이 드세요?" 그러면 "술을 먹고 싶어서 먹지 무슨 이유가 있나요?"라는 식으로 시비를 붙는 분은 없지요...^^ 대개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라는 핑계를 대시는데 이러시면 제가 얘기를 시작합니다. "그렇죠..사회생활을 하시다보니, 친구들과 어울리시다 보니 술을 할 수 없이 드시게 되지요? 그런데 말이죠. 그 것..다 핑계거든요? 다들 그렇게 대답하세요. 영업을 하다보니, 광고회사를 다니다보니, 노가다 일을 하다보니..그렇게 말이지요. 그런데 제가 딱 한 분한테는 졌습니다. 누군지 아세요? 술회사를 다니시던 분이었거든요? 진로였던가 오비맥주였던가 기억은 안 나지만...^^ (이것은 실제 사례입니다.) 그 분한테는 그냥 술 드시라고 했어요. 그 분 빼고는 다~ 핑계라구요. 솔직히...본인이 먹고 싶은데 기회가 없으니 모임도 만들고, 술 한 잔 들어가면 바로 자동으로 계속 붓는 것 아니세요?" 이렇게 얘기하면 대부분 웃으십니다. 찔리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환자가 긴장을 푸는 순간입니다..^^

이제 본격적인 얘기로 들어가야지요. 이제 간기능검사에서 나오는 SGOT, SGPT, GGTP 얘기..그리고 알코홀 중독이란 게 별 것 아니고 괜히 술 마실 일 없으면 옆사람에게 저녁먹자고 부추기는 것, 다음날 일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마시는 것도 알코홀 중독의 시초라는 얘기...또 알코홀성 간경변이었는데 술 딱 끊고서 3년째 잘 지내시는 제 환자분 얘기..등등..술을 마시고 자면 본인은 잘 자는 것 같지만 사실은 깊이 못 자면서 매일 피곤한 원인이 된다는 얘기..(정말 간 자체가 나빠서 피곤한 건 드물어요)..등등등.

이 정도로 얘기하고 나면 대충 표정에서 보입니다. 정말 제 얘기에 공감을 하고 의지를 보이는 분이 계신가하면 역시 마이동풍으로 뜨아한 얼굴을 하고 계시는 분도 계시지요. 그렇지만 그냥 "술 끊으세요! 건강에 안 좋아요."라고 하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효과를 봅니다. 물론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진료실에서 나가시면서 "그래도 어쩔 수 없으면 조금 마셔도 되지요?"라고 정말 "타협"을 하려는 환자분도 계십니다...그럴 때 저는 역시 "절대 안돼요. 한방울도 안돼요"라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간경변이 심한 경우나 알코홀 중독이 심한 경우이지요) 경한 경우에는 일단 웃으면서 "그래도 안 좋으니 노력하셔야 됩니다.."라고 한발 물러서 줍니다. 다음에 조이면 되죠 뭐..^^

정작 중요한 것은 다음 방문 때입니다. 예를 들어 4주후에 오셔서 혈액검사를 하거나 그냥 진료를 할 때 조금이라도 술을 줄이거나 끊으셨으면 칭찬을 무지막지(?)하게 해 드립니다. "오우! 잘 하셨어요" "힘든건데..잘 이겨내셨네요" 그리고 술을 끊고 두어달쯤 지나면 정말 피부도 좋아지고 그야말로 다크써클도 좋아지거든요. "술 끊으니 덜 피곤하시죠?" "사람들이 얼굴 좋아졌다고 하지 않아요? 제가 보기에는 많이 좋아지셨는데.." 이런 식이지요. 본인은 잘 못 느꼈을지라도 제가 좋아졌다고 얘기하면 정말 좋아진 점을 찾게 되고..그게 포지티브 피드백이 됩니다.

물론 이 방법이 안 먹힐 때도 있지요. 잘 하시다가 중간에 포기를 하시면 따끔한 질책도 하구요..결국 실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많은 분들이 성공하는 걸 봤습니다. 그리고 그런 분들은 정말 고마워하지요. 제가 술 끊는 것에 대해서만 예를 들었지만 사실, 고혈압이나, 당뇨병, 담배, 통풍 등등 식습관과 체중조절등이 중요한 병에는 다 응용해서 적용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1. 환자를 야단치지 말고 공감대를 형성할 것. (어쩔 수 없는 환자의 상황을 이해해 줄 것. 그렇지만 좋지 않은 습관이라는 점도 지적할 것)
2. 병의 진행이나 경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것. 습관을 바꿀 경우 얻게 되는 이익에 대해 환자를 이해시킬 것.
3. 추적관찰 시 습관을 고치려는 환자의 노력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말 것.

양깡님의 포스트를 보고, 많지 않은 임상경험이지만 제가 나름대로 적용하고 있는 원칙들을 써 보았습니다. 저도 이렇게 써 놓고 보니 거창해 보이기는 합니다만...사실 별 거 아닌 노하우입니다. 그냥 "저러고 사는구나.."라고 읽어 주시면 감사...^^

덧글

  • 太虛 2009/02/24 22:21 # 답글

    으음. 명심해두겠습니다. 우선 체크포스트!
  • 늑대별 2009/02/25 18:33 #

    복습까지는 하실 필요 없구요..^^ 그냥 느낌만 가시시면 됩니다. 그리고 진료실에서 해 보시다보면 알아서 찾아지실거구요..^^
  • 마바리 2009/02/24 22:34 # 삭제 답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 늑대별 2009/02/25 18:34 #

    맞습니다. 그게 정답일 겁니다. 아주 작은 걸 찾아내서 칭찬을 해 주셔야 합니다..
  • 아이페오스 2009/02/24 22:53 # 삭제 답글

    농촌에서 힘들게 일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진료하다보니, 금연 금주 캠페인이 전~~~혀 먹혀들지 않습니다. 언제나 물어보고는 좌절하지요. orz
    그래서 그런지 저도 모르게 생활습관 교정 쪽에 소홀해진 감이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반추해보니 그런 느낌이 드네요. 이거 반성해야겠군요. =_=)a
  • 늑대별 2009/02/25 18:36 #

    벽에다 대고 얘기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환자도 있어요. 그런 환자분들은 저도 두손, 두발 다 들고 그냥 "약이라도 잘 드세요." 모드로 갑니다..ㅠ.ㅠ ( 내 말 안 듣는다고 쫒아내서는 그나마 약도 안 드실 테니...쩝.)
  • 박성용 2009/02/24 23:53 # 삭제 답글

    선배님 노련미가 돋보입니다 :-) 전 이런거 참 못하는데 :-)
  • 늑대별 2009/02/25 18:37 #

    원래 구렁이도 오래 묵으면 이무기가 된다고 했나요? 느는게 입담이요, 주는 게 학식입니다..ㅋ.ㅋ
  • drtrue 2009/02/25 00:05 # 답글

    오호.. 그럴 땐 그런식으로.. 부인과에도 알고보면 만성질환이 좀 있는데 그렇게 해야겠네요. 전 환자분들에 대한 칭찬에 좀 인색한 편이라서. 도대체 설명이 안돼!라고 투덜거렸는데.. 선생님 포슷 읽고보니까 제가 원칙이고 뭐고 없게 설명했던 게 원인이었네요. 쩝.. 반성 많이 하고 갑니다.

    그래도 저희과 경우에는 수술받는 분이 많아서 제가 예전에 수술받았던 경험(좋진 않지만 그래도 공감대 형성 200%라서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된다능)을 얘기하면 그런 면에서는 바로 공감대 형성 및 나이 비슷한 환자분 경우에는 바로 절친모드 형성이 되드라는..
  • 늑대별 2009/02/25 18:38 #

    하하...말씀을 들으니 어쩌면 저도 술을 자주 먹었던 의사라서 저렇게 공감대를 잘 형성하는 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럼 결론은....의사들은 나쁜 짓도 많이 해 봐야 한다???? - 이것 좀 이상한 결론으로 새는 것 같은...^^
  • 원두차 2009/02/25 00:46 # 답글

    오오, 라뽀 형성인가요?^^ 정말... 생활습관을 고치는 건 쉬운 일이 아닐테니 더더욱 이런 것들이 중요해지는 것 같습니다. 역시 좋은 진료를 위해서는 사소하고 기본적인 것에 충실해야 하는 것 같아요. 교과서적으로만 진료해도 사실 반은 먹고 들어가는데 실제로 그러기는 참 힘들다는 걸 주위를 보면 좀 느껴집니다ㅜㅜ

    그나저나... 학년이 올라가 소화기 수업을 들으면서 새삼 소화기내과 의사분을 존경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어려운 내용들을 다 외워야 하다니...ㅠㅠㅠㅠㅠㅠ
  • 늑대별 2009/02/25 18:40 #

    오해입니다. 소화기내과 의사는 어려운 걸 다 외우고 살지 않는답니다. 아니, 모든 의사들은 다 외우고 살고 있지 않지요. 몇가지 원칙만 외운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자세한 것은 그때 그때 찾아보면 되거든요...^^
  • Semilla 2009/02/25 02:37 # 답글

    오오... 멋지십니다. 이거, 병원에서만이 아니라 교육이나 다른 인간 관계에도 해당되는 것 같아요....
  • 늑대별 2009/02/25 18:41 #

    그럴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직업적인 것과 아닌 것과는 차이가 많이 난다는....저도 환자에게는 저런 원칙을 잘 지키는 편인데 막상 가족에게는 "버럭"이 먼저 나선다는...ㅠ.ㅠ
  • 새벽안개 2009/02/25 09:13 # 답글

    호~ 이건 지혜와 유머를 겸비하지 않으면 힘든 경지네요.
  • 늑대별 2009/02/25 18:46 #

    지혜는 몰라도 유머는 조금 필요합니다...^^
  • 양깡 2009/02/25 09:16 # 삭제 답글

    크~ 역시 늑대별 선생님! 어떤 경우라도 최선의 결과를 유도해야하는데, 경험이 짧아서 환자가 잘 따라오지 못하거나 고집을 부리면 너무 쉽게 채념하게 됩니다. 평생을 진료실에서 사신 훌륭한 여러 선배 선생님들을 보면 정말 예전에는 느끼지 못한 존경심을 가지게 됩니다.
  • 늑대별 2009/02/25 18:48 #

    나이가 들면 일단 "버럭"하고 나가는 것이 좀 줄어들더라구요. 그리고 여러 경험을 하다보면 생각도 조금 넓어지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도 조금 더 하게 되고 말이지요...양깡님은 정말 훌륭한 大醫가 되실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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