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11일
전문의가 내 건강관리를 해 주지는 않는답니다.
소화기내과 전문의인 제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이 참 송구스럽고 답답한 노릇이지만 그래도 현실을 똑바로 아셔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요.
오늘, 안타까운 얘기를 들었습니다. 오래된 대학친구인데 어머님이 당뇨의 합병증으로 혈액투석을 하고 계셨습니다. 최근 넘어지셔서 팔이 골절되셨고 당뇨와 신장투석을 하시기 때문에 뼈가 잘 붙을 리가 없지요. 수술을 하셔야 하는데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수많은 검사를 하면서 입원을 하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그러던 보름전부터 배가 불러져서 관장을 하고 변비약을 드시고...그러다가 안되어서 검사를 해 보니 간암 말기시랍니다.참...뭐라 위로해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물론 당뇨나 말기신장질환으로 투석을 하시는 분들은 저항력이 매우 낮아지고 암같은 악성질환의 발생빈도도 일반인에 비해 높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대개는 그 나이대가 악성질환이 많이 생기는 연배이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투석을 담당하고 매주 2-3번씩 병원을 찾는 환자로서는 그동안 그 많은 검사를 하고 치료를 하면서 왜 간암을 일찍 발견하지 못했을까 하는 원망을 듣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이런 현상이 꽤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것, 그리고 그런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는 것을 알고 계신지요. 제가 예전에 있던 병원에서도 심심치 않게 꽤 진행된 위암, 대장암, 간암들이 발견되었는데 그게 소화기내과를 다니던 분들이 아니랍니다. 그 병들은 대개 제 옆방을 들락거리는 고혈압환자들이나 당뇨병 환자들에게서 발견됩니다.
이게 어찌된 일이냐면..환자입장에서는 정기적으로 고혈압약을 처방받고 당뇨약을 처방받으러 병원을 다닙니다. 그 와중에 혈액검사도 받고 가끔 다른 검사도 받게 되지요. (그러나..이 검사들은 그 환자의 주진단명에 관계된 검사들이지요.) 환자들은 당연히 내 주치의가 내 몸을 다 봐 줄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또 그렇게 믿고 다닙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아시다시피 종합병원이나 특히 대학병원에 가면 진료시간이 정말 많아야 3분...어떤 때는 1분에서 2분정도..그 사이에 주치의가 내 몸을 다 봐 줄 수 없습니다. 또한 안 그러려고 해도 의사, 특히나 어느 분야의 전문의에게 특정한 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집중적으로 오면 그 의사도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한 얘기밖에는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묻고 답하는 것이 다 특정한 질환에 대한 것이지요. 혈압, 당뇨에 대한 얘기만 하려고 해도 시간이 모자라는 걸요...그러니 환자의 기대와 현실은 점차 괴리가 넓어져가고 그 사이에서 전혀 예상치 못 했던, 또한 환자나 의사가 챙기지 못했던 엉뚱한 병들이 진행되어서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저도 오전에 40명정도의 환자를 보면 굉장히 힘이 드는데..8시반부터 12시반이나 오후 1시까지.(화장실 한 번 안 가고 독하게 봅니다.) 시간을 환자수로 나눠보면 한 환자에게 6분정도? 그것도 신환이나 좀 복잡한 문제를 가지고 오는 환자들에게 시간을 좀 더 배분하는 걸 감안하면 계속 다니는 환자분에게는 3,4분정도 할애가 될 것입니다. 위에 말씀 드리는 상황에 대한 의식을 항상 하기 때문에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노력하고 시간이 허락되면 제가 담당하지 못하는 유방암이나 자궁암검진을 잘하고 계시는지 잔소리도 합니다만..그래도 저도 점점 제 전문분야에 매몰되어 가고 있는 것을 느낀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될까요?
1. 일단, 자신의 주치의의 한계를 인식하셔야 합니다. 주치의가 어느 한 분야의 전문의거든 다른 분야에 대한 병은 자신이 어느정도는 챙기셔야 됩니다. 요즘 많이들 하고 계시는 국민보험공단에서 실시하는 암검진 같은 것도 좋은 방법이 되겠지요. 경제적으로 풍족하시다면 종합검진을 정기적으로 받으시는 것도 한 방법이구요.
2. 특별한 병이 있을 때는 그 분야에 대한 세부적인 전문의를 찾아가셔야 합니다. 그렇지만 소소한 건강검진이나 자신의 몸을 전반적으로 관리하실 때는 바쁘고, 한 분야에만 전문적인 전문의를 찾지 마시고 동네의 개원의나 가정의학과를 찾으셔서 상담을 정기적으로 하시고 검사를 받으시는 것이 백번 나을 것입니다.
3.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지 못하신다면 내가 집중적으로 치료해야 되는 병에 대해서는 대학병원이나 세부전문의에게 다니되 전반적인 건강관리에 대해서는 따로 가까운 병원이나 의원에 내가 믿을 수 있는 주치의를 정하고 정기적으로 상담하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구요.
병원을 다닌다고 마냥 안심하지 마시고 내 건강은 내가 챙깁시다. 그리고..세부전공을 하시는 전문의들은, 내가 관심이 없는 분야의 검사는 잘 하고 계시는 지...환자분들에게 좀 챙겨드립시다.
# by | 2008/11/11 23:09 | 진료실 이야기 | 트랙백(1) | 덧글(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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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전문의가 내 건강관리를 해 주지는 않는답니다.
제가 미국에 와서 전공을 바꾸었지만 한국에서는 가정의학과 전문의였습니다. 그런데 가끔 사람들로부터 가정의학과가 무엇을 하는 과인가 하고 물어보십니다. 이 글은 소화기 내과 전문의께서 쓰신 글인데 요지는 세부 전문과의 전문의를 주기적으로 만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전반적인 건강문제를 챙겨줄 주치의가 필요하다는 것이고 이런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가정의학과 전문의입니다. 아직 30세 미만인 분들은 아마 아직은 건강에 자.....more
건강은 정말 남이 챙겨줄 수 없는 것 같아요. 당사자가 잘 챙겨야죠.
이 글과 상관 없는 것 같은 얘기지만...은근히 상관 있는 에피소드가 있어서 살짝..^^;
호흡기내과 '전문의'인 저희 형부가 대학병원에서 일하던 시절...언니 아이들 소아과도 동네보다는 그곳이 직원가라 더 싸기 때문에 큰 병원으로 다녔었죠.
셋째아들 아토피 때문에 피부과를 갔는데, 주치의께서 "애기가 입술이 페일(pale)해요. 빈혈인 것 같은데..."
저희 형부 왈.."엄마 닮아서 그래요~~" (언니가 입술에 색깔이 좀 없긴 합니다..)
다음 피부과 진료 때도 주치의께서 "체중도 그렇고....빈혈인 것 같은데....."
형부 왈..."에이 설마요~"
언니 왈..."아우 그냥 검사 해봣!!"
그래서...700원(..) 내고 검사했더니...아주 심한 철결핍성빈혈이었답니다. -_-
호흡기내과의사 입도 뻥긋 못 했다는 후문.....역시 전문의는 자기 분야만 안다는 걸 저도 확실히 깨달았죠.
그 피부과 주치의께서는 소아과는 아니지만 워낙 소아 아토피 전문이셔서 그런지 감이 딱 오셨나봐요.
언니는 그 일 때문에 두고두고 형부 놀려먹고 산답니다. -_-;
간혹가다 언니 지인들이 각종 질병에 대해 형부한테 상담을 하고 싶어 하는데...언제나 이렇게 대꾸하죠.
"폐 관련 아니면 우리 남편은 아는 게 하나도 없어요."
우리 둘째보고 할아버지께서는 "야, 쟤 빈혈검사좀 해봐라"하고 매일 그러시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정상같은데요!" 결론은 정상...이었던 적도 있습니다만. (이땐 가족간에 쌈나죠^^)
하기사 예전에 어머니가 머리아프다고 하시는데 도대체 왜 그럴까 아버지와 제가 고민하다가 아프다고 하신지 사흘째만에 "어, 여기 뭐가 났어."하고 머리를 부자에게 들이미시는데 "이거 zoster잖아!"하고 곧장 피부과 교수님한테^^ "아니 왠일로 병원에 오셨어요?" "이거요." 7일간 입원하셨죠.(일년에 한 번 생길까 말까 한다는 피부과 입원환자가 되시겠습니다~~~^^)
그래도 '의사선생님이 다 알아서 해주실거야' 하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고요. ^^;;;
늑대별 님이 써주시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의사와 환자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어요. :)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의사는 환자의 아픔을 봐주는 사람이라는 기본적인 진리입니다.
제 아내의 경우를 소개하겠습니다. 아프다고 그랬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내과를 찾았습니다. 온갖 검진 다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무 문제 없다는 것입니다.
하룻밤은 응급실까지 갔습니다. 죽을 것 같다고 그랬습니다. 이검사 저검사 해보자 해서 다 했습니다. 문제 없다고만 했습니다. 집에 가라고만 합니다. 환자는 아프다는데, 죽을 것 같다는데 이상이 없다는 얘기만 했습니다. 아무도 그 이상을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연히 만난 가정의학과 선생님에게 간단히 얘기 했더니 정신과 치료를 받아보라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공황 장애'랍니다.
너무 먼 길을 돌아갔습니다.
물론 의사 마음을 이해도 하지만 누군가 한명은 다른 생각을 해봐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원인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프다'는 명제에 조금 더 집중해봤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 봤습니다.
한의사를 욕합니다. 차라리 굿을 하는게 낫다고 합니다. 공감합니다. 도대체 뭐가 들었는지 알 수 없는 약을 믿고 먹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한의원을 찾습니다.
아주 쉬운 사실 하나는 어찌됐던 한의사는 아프다는 사실에 집중해 주었습니다.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할지는 몰라도 아픈 사람에게 아프지 않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힘드시겠지만 그래도 환자가 아프다면, 자기가 잘 모르겠다면 혹시 의심나는 부분으로 치료받기를 권해주는 정도라도 역할을 하셔야 된다고 봅니다. '어디에 있는 무슨병원 한번 가보세요'... 그정도의 여유만이라도 가져주실 수는 없는 것인지...
무엇보다 그런 것들이 당연해지는, 보다 더 여유롭게 진료가 가능해지는 그런 세월이 빨리 오길 빕니다.
의사, 국민들이 많아지고 사회적인 '합의'가 된다면 우리 의료환경도 훨씬 성숙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